설경(雪景)

날 새고 눈 그쳐 있다
뒤에 두고 온 세상,
온갖 괴로움 마치고
한 장의 수의에 닾여 있다
때로 죽음이 정화라는 걸 늙음도 하나의 가치라는 걸
일러주는 눈밭
살아서 나는 긴 그림자를
그 우에 짐 부린다.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 어렸을 때 설날에 할머니 댁에 갔을 때 눈이 한가득 내렸다. 아침부터 시작된 폭설은 밤이 될 때 까지 그칠 줄 몰랐고,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궁금한 마음에 창밖을 살펴봤더니 눈은 그쳐있었고, 세상이 온통 새하얗게 덮여있었다. 신나서 막 동생하고 눈싸움도하고, 눈사람도 만들면서 놀다가 화단 근처에서 눈에 덮여있던 죽은 개구리를 보게 됐다. 그때가 겨울이었으니 겨울잠을 자고 있었을 개구리인데 갑자기 내린 눈이라는 시련에 저항하다가 죽었을 것 이다. 이 시를 읽다가 기억났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이 시집 전체를 감상했을 때의 느낌은 작가가 무언가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있는데 그에 대한 저항 방법으로써 시를 골랐다는 느낌을 받았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등의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이렇게 철저하게 통제와 감시당하는 시대적인 현실에 대해서 고발을 하기 위해 열심히 시를 썼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과 같은 시를 통해서 작가가 상실감을 갖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갖자는 메시지를 보내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작가가 시를 많이 쓴 시기가 군사정권 시절이라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이 시를 선택한 것은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날 새고 눈 그쳐 있다'라는 첫 행에서, 갑자기 5살인가 6살 즈음, 아침에 일어났더니 바깥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던 배경이 기억 속 한 구석에서 은은하게 떠올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눈이 왔었던 기억들이 하나 둘 씩 떠오르면서 이 시를 선택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뒤에 나온 행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평화롭고 예쁜 추억에 덮인 그런 내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수의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9살 때 돌아가셨던 친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나랑 동생이 태어났을 때 앞마당에 감나무도 심으시고 우리를 끔찍이 여기셨던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던 충격이 10년이 지나고 좀 사라졌던 것 같은데 수의라는 단어에서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 때문에 다른 시는 인터넷 뉴스 읽듯이 한 번 읽고 지나갔던 것 같은데 이 시만 여러 번 보고 자꾸 그 의미가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됐던 것 같다.

 

나는 이 시가 객관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나는 뛰어난 시는 읽으면서 바로 그 배경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면서 시에 나온 단어, 행 하나하나를 곱씹어 볼 수 있는 시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 시는 그런 기준을 충족하기 때문이다. 이 시집을 보면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군사정권에 대한 불만이나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였다. 이렇듯 그의 시 전반을 봤을 때 내가 고른 설경1행부터 4행까지를 보면, 광주에서의 5.18 민주화운동이 끝난 이후 군사정권에 대항하여 싸웠던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싸늘한 시체로 수의에 덮여있는 배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시가 정확하게 광주 민주화운동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머릿속에 떠올랐던 크고 참혹했던 운동이 먼저 떠올라서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생각했다. '날 새고 눈 그쳐 있다'라고 쓰인 첫 행은 치열했던 운동이 끝났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무언가 안도감을 줬던 것 같은데, '온갖 괴로움 마치고'' 한 장의 수의에 덮여 있다'라고 쓰여진 3행 및 4행에서 무언가 안타깝고, 울컥한 심정이 들었다. 중학교 시절,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 배울 때면 항상 등장했던 1980518일 광주. EBS에서 만든 비디오나, 영화 '화려한 휴가' 같은 자료들 덕분에 얼마나 치열했고, 군사정권의 참혹한 실정을 알고는 있었지만 무언가 울컥한 심정이 들었던 것은 아마 어머니가 직접 보고 들으신 것을 어렸을 때 들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 광주에서 사셨는데 민주화운동 당시에 할아버지께서 큰외삼촌을 광주 바깥으로 피신시키고, 가족들끼리 집안에서 밖에 안 나가고 갇혀만 있었는데 집안에 총알도 날아 들어왔다는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갑자기 생각났었다. 아마 이러한 것 때문에 더욱 착잡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이 시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죽음이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면 6행에 보면 '늙음도 하나의 가치라는 걸'에서 '늙음도'라고 하는 것을 보면 지금 운동하다 죽은 '당신들도'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니 그렇다면 가치 있는 죽음은 어떤 죽음을 보고 하는 것일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늙음도 하나의 가치라고 말하는 걸 보면 아마 이 세상에 가치 없는 일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늙음이라는 것은 그저 시간만 지나면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이것도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모든 일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사람들의 죽음도 가치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문구이다. 어떠한 가치를 가졌는지는 5행에서 '때로 죽음이 정화라는 걸' 이라고 쓰여 있는 문구를 통해 지금은 군사정권 때문에 세상이 썩어있고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당신들은 그런 썩은 세상을 정화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말한 죽음에 대한 것은 이 시에 나온 행들과 작가가 처한 상황을 통해 유추해 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러한 죽음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지는 약간의 의문이 든다. 작가는 같이 광주 민주화운동을 했던 자신의 동료들의 죽음을 위로하려고 늙음에도 가치가 있다고 말을 했는데, 아마 오늘날에는 바보 같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나라의 경제수준이 발전하면서 서구식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사람들의 의식 때문에 시위를 하더라도 자신의 손익을 따져서 시위를 하는데, 나의 안전과 나아가서 내 가족의 안전이 훨씬 중요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시위를 하면서 자기 자신이 불구가 되던가 죽을 위험에 있는데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 운동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사이트인 '일베'라는 사이트도 생겨나서 내 생각에는 그다지 가치 있게 세상을 떠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또 들었던 생각은 '그렇다면 가치 있는 죽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나와는 먼 거리에 있는 것이라 생각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주제였는데 어느 정도 고민해 본 결과 내가 생각해 낸 답은 '남들이 대부분 존경하거나 박수칠만한 죽음'이다. 내 자신에게 오랜만에 어렵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서 답이 허접스럽게 나온 면이 없지는 않지만, 남들이 모두 존경할 만한 일을 하면서 죽었을 때의 죽음이 자기에게 가장 가치 있는 죽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예전에 일본의 지하철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선로에 빠진 일본인을 구한 후 차마 다시 선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던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유학생은 아직도 박수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 낸 가치 있는 죽음의 정의로는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하늘로 떠난 사람들의 죽음을 가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들은 남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박수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현대사 기록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고, 오늘날 발전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를 했기에 가치 있는 죽음은 아니었지만 가치 있는 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죽음. 아마 이 시가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시를 잘 모르는 나 같은 과학고 출신 공대생이 봐도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죽음이라는 글자를 썼던 것 때문이다. 가장 가까이 두기 꺼려지는 단어이고, 자극적인 단어이지만 어쩔 수 없이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하는 단어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 같고 위에서 글을 쓴 것처럼 여러 가지 생각을 계속 할 수 있게 했던 단어이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서 불혹의 남자는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셨다. 대게 자식들이 학교에 가고 꿈을 갖기 시작하는 때인데 만약 가장인 자신이 죽는다면 자신의 가정이 파괴되고 자식들이 힘들어지는 것 때문에 두려워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국어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아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것 같지만, 이 시를 읽고 죽음에 관하여 생각해 보니 갑자기 기억이 떠올랐고, 십대였던 그 때와 이십대 초반의 지금, 죽음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음을 느꼈다. 십대였던 그 당시에는 죽음을 남의 얘기라고만 생각해서 별로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것 때문이다.

 

다음으로 8행에 나오는 그림자라는 단어가 인상 깊었다.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보자면, 함께 운동을 벌이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 것 같다. 미안하고 안타까워서 수의를 쳐다보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그림자한 단어로 잘 표현이 된 것 같다.

 

사실 이 시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맨 처음 첫 행을 읽었을 때의 떠올랐던 어렸을 때 많은 눈이 내린 다음날 아침과는 전혀 다른 죽음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여 본문에서 많이 적었지만, 아마 작가의 배경이나 이 시집 안에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보지 않았다면 아직도 어렸을 때의 그 배경을 떠오르고 있을 것 이다. 이런 군사정권 시기를 살았던 작가가 후대의 사람들에게 그 시대의 참혹함을 시로 표현하여 함축적으로 꾹꾹 눌러 담아놨기 때문에 나처럼 이 시절을 겪어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 시에 담겨있는 물건을 하나씩 꺼내보듯이 이 시대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고, 긴 산문으로만 보면 그저 읽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할 텐데 시로 표현되어 있어서 시를 해석하기 위해 나름의 주관적인 생각을 더해갔던 것 같다. 처음으로 샀던 시집(게 눈 속의 연꽃- 황지우)인데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