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다라의 구슬


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된 그물이 걸려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어떤 구술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에 그 울림이 연달아 퍼진다 한다

- 화엄경

 

작은 연어 한 마리도 한 생을 돌아오면서 안답니다

작은 철새 한 마리도 창공을 넘어오면서 안답니다

지구가 끝도 없이 크고 무한정한 게 아니라는 것을

한 바퀴 크게 돌고 보면 이리도 작고 여린

푸른 별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구 마을 저편에서 그대가 울면 내가 웁니다

누군가 등불 하나 켜면 내 앞길도 환해집니다

내가 많이 갖고 쓰면 저리 굶주려 쓰러지고

나 하나 바로 살면 시든 희망이 살아납니다

 

인생이 참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참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한때는 씩씩했는데, 자신만만했는데,

내가 이리 작아져 보잘것없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작아진 게 아니라 큰 세상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관계 그물이 이다지도 복잡미묘하고

광대한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세상도 인생도 나도 생동하는 우주 그물에 이어진 작으나 큰 존재입니다

지금은 개인의 시대라고 합니다

우주 기운으로 태어나 우주만큼 소중한 한 생명,

한 인간이 먼저, 내가 먼저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내 한 몸 바치는 것을 미덕으로 교육받아온

개인 없는 우리에서

자유롭게 독립하여 주체적인 개인들의 연대

개인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라고 합니다

세계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거대한 정보 네트워크가

구슬처럼 빛나는 개개인을 하나로 엮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다라의 구슬처럼

지구 마을의 큰 울림을 만들어가는 주체입니다

 

새벽 찬물로 얼굴을 씻고

서툰 붓글씨로 내 마음에 씁니다

 

오늘부터 내가 먼저!

 

내가 먼저 달라지기

내가 먼저 인사하기

내가 먼저 정직하기

내가 먼저 실행하기

내가 먼저 손 내밀기

내가 먼저 돕고 살기

 

무조건 내가 먼저

속아도 내가 먼저

말없이 내가 먼저

끝까지 내가 먼저



어렸을 때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주 많을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고, 몰랐기에 걱정도 없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자기만의 세상에서 가장 컸던 자신을 동경하며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두꺼워져 가는 지식의 두께에 반비례 하는 자기만의 세상에서의 자신의 크기를 의식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한 없이 작아지지만, 한 없이 커질 수 있는 존재이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사람이 감옥에 있으면서도 정말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박노해 시인이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징역으로 형을 살면서 감옥에서 썼던 책이라 솔직히 말하면 시인이 집필했던 배경만 보고 엄청 절망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샀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로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제목을 붙일만 한 작품이었다. 그 예로 이 책 안에 수록되어 있는 키 큰 나무숲을 지나니 내 키가 커졌다라는 시를 보면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며, 좋은 인연을 만났다고 쓰는 것만 봐도 시인은 철창 안에서 전혀 괴롭고 절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약간의 슬픔은 있는 것 같지만,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것 자체를 슬퍼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므로 이 시집 전체에 대한 감상은 희망차다고 생각한다.


인다라의 구슬이라는 제목은 나같은 공돌이에게 관심을 끌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제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를 고르게 됐던 이유는, 35~6행에 나온 아닙니다 내가 작아진 게 아니라 큰 세상을 알게 된 것입니다라는 구절이 내 기억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거치면서 점점 더 커지는 세상, 그러나 점점 더 작아지는 나를 떠올리게 되어 이 시를 선택했다.

 

나는 이 시가 객관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맨 첫 행에서 연어이야기를 하면서 큰 세상을 말하다가 갑자기 개인의 시대, ‘정보화 시대니 등 내가 생각하기에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말이 나오는 것 같아 연결이 안 되는 것 같다. 그저 인다라의 구슬과 어떻게든 이어보려고 갑자기 튀어나온 구절 같아 보였는데, 아마도 작가는 오늘날에 세상에 대해 보여주고 싶어서 이런 말을 썼을 것이지만,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 별로 감흥이 없었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전 내용과 관계없어 보여서 이 시가 반 토막 나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이 시가 객관적으로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두 개의 시로 나뉘어 있었다면 조금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 시가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이 시를 인용한 이유로써 들었던 아닙니다 내가 작아진 게 아니라 큰 세상을 알게 된 것입니다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이 구절 덕분에 그동안 내가 자라왔던 배경을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커서 난 뭐가 될까, 마우스 커서처럼 큰 세상을 나가지 못할까

이 시를 읽고 떠올랐던 가수 리쌍의 회상에 나오는 가사이다. 어른이 되었을 때의 큰 세상에 대한 어린 자신의 막연한 두려움에서 나온 구절일 것이다. 누구나 다 어린 시절은 있고,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서 진로를 생각하거나, 어른들의 말 등을 통해 큰 세상을 알게 되고, 요즘 같이 청년들이 암울한 시기에는 이런 큰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이 두려움을 어떻게 하면 떨쳐버릴 수 있을까에 대한 것 보다는 어떻게 하면 작아져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며 조금씩 낮아지는 자신감을 키울 수 있을 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유치원 때의 난 거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주변 친구들이 유치해 보였다. 심지어 재롱잔치를 준비한다고 할 때에도 우리가 왜 재롱을 떨어야 하지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유치원 생 치고는 나이에 안 맞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날, 갑자기 큰 세상을 맞이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볼일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 때의 8살 때의 나한테는 뜻 깊은 사건이었던 것 같다. 내가 입학했던 초등학교는 이상하게도 졸업식과 입학식을 동시에 하는 학교였다. 입학식을 학기가 시작하는 3월에 한 것이 아니라서 가능했을 텐데, 식의 마지막에 있는 행사가, 졸업하는 6학년 선배가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꼬맹이들에게 학교를 잘 맡아달라고 인사하는 것이었다. 여섯 살 차이나는 키도 엄청 큰 선배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것은 거만했던 나에게 충격을 줬다. 엄청난 나이 차이의 선배들이 내 눈앞에 있는 것도 신기한데 자신보다 어린 애들에게 고개를 숙인 다는 것에서 약간의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학교라는 아주아주 약간 큰 세상에 첫 발을 디뎠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난 거의 사회 부적응자 수준이었다. 친구가 없어서 안 사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다가오는 친구를 내치고, 집에 갈 때도 보통의 다른 친구들은 다 친구들과 같이 하교를 하는데, 나 혼자 신발주머니를 발로 차며 들어오다가 나보다 어린 애들이 보이면 신발주머니로 갑자기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집에 전화도 몇 번 오고, 정신과에도 엄마랑 같이 같던 기억이 있다. 이랬던 내가 바뀌게 되는 큰 계기가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갑자기 지방으로 발령이 나셨던 것이었다. 가족이 다같이 지방으로 갔고, 나도 그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 지방으로 이사가면서 소위 노는 놈들의 무리에서 그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의 사회생활을 배웠고, 매일 축구를 하면서 사회성을 길러나갔다. 모든 걸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매일이 즐거웠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씩씩했다. 중학교를 들어가기 전 다시 인천으로 와서 인천에서 중학교를 다니면서는 공부도 잘해서 자신감이 충만했었다.

 

열심히 공부한 덕에 나는 과학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 곳에서 처음으로 작아진 나를 보게 됐다. 나는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고등학교 생활을 했지만 성적은 최고에 도달할 수 없었다. 과학고등학교 친구들은 자신만이 잘하는 것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었고, 특출난 것 하나 없이 모두 보통인 평범한 학생이었다. 노력해도 안됐다. 아니, 어쩌면 시간이 부족해서 그랬을 지도 모르지만 일단 결과적으로는 안됐다. 내 자신이 작아보였고,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약간의 우울함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 그저 그런 세상인 중학교에 있다가 새로우면서 작지만 큰 세상인 과학고등학교로 올라와서 그랬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버릇처럼 했던 일은 내 장점을 찾는 것이었다. 이 친구 저 친구 비교해가며 나는 저 친구보다는 수학을 잘 하는 것 같아’, ‘아 저 친구보단 솔직히 잘 생겼으니까 말 다 했지같은 혼자만의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은 내 정신만 피폐하게 만들 뿐, 전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없고 시간 낭비라는 것을 알기 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작은 집단에서의 서열화는 무의미하고, 조금 더 큰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고등학교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간 아깝지 않게 열심히 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며 나를 발전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성장해갔다.

 

대학에 올라와서도 난 또 작아져만 갔다. 카이스트에는 과학고등학교 때에 비하면 더 특출난 학생들이 많았고, 이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또 특출난 자질 하나 없는 그저 그런 학생으로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하지만, 컨퍼런스에 참여하거나, 지식 멘토링, 설명회같이 다른 학교 학생들과 만남을 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나는 작아진 나가 아니라 큰 세상 속의 나를 점점 알게 됐다. 물론 이 에세이를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나는 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는 있지만 요즘 점점 드는 생각은 내가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큰 세상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우리 반, 우리학교, 우리도시만 겨우 생각하던 내가 우리나라, 전 세계를 보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크기는 상대적인 것이기에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구 바깥에서 아주 작은 점으로도 보이지 않는 내가 거울 앞에서는 커보이 듯이, 내 자신의 크기는 내가 생각하는 관점, 정도에 따라 변한다고 생각한다. , 나의 마음가짐에 따라 나의 크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눅 들지 않고, 나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열심히 키워나가면 언젠가는 우주에서도 내가 보일 정도로 커졌다는 생각을 갖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공짜로 그러한 보상을 얻을 수는 없고, ‘열심히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무들이 햇빛을 받지 못해 죽어버릴 정도로 주변에 피해를 줄 큰 나무가 되어버린 나의 모습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경쟁 사회인 인간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통해 내가 밟고 올라가게 될 사람은 분명히 생기겠지만, 그건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만 그래야지 남에게 피해를 주고 커진 내 모습은 분명 좋은 인상을 남기지도 못할뿐더러 양심에 가책을 느낄 것이다. 작가가 시에서 말한 것처럼 개인 있는 우리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가 도우며 사는 공생의 관계를 가지면서 커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에 내가 먼저라고 계속 반복되는 구절을 보고서는 아마도 작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여, 어떻게 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내 자신이 커갈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 낸 것 같다. ‘내가 먼저인 삶을 통해 남을 돕고 정직하게 삶으로써 개인 있는 우리의 아름다운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 커져 있는 나, 즉 성공한 나를 보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살 것이다. 이 에세이를 쓰면서(시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방송인 유재석이 20대 때의 자신의 모습을 담은 노래인 가수 처진 달팽이의 말하는 대로에서의 가사 중,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봤지, 일으켜 세웠지, 내 자신을이 떠올랐다. 내가 막연하게 열심히살아야겠다고 한 것은 유재석 씨가 노래한 것처럼 자신이 맡은 일에 미친 듯 달려드는 것을 의미한다. 평범한 상태인 큰 세상을 봐버려 작아져 버린 나를 그대로 보며 살아가기에는 내 욕심이 너무나 많기에 나는 미친 듯 살 것이고, 한 번 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