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木花)

서정주

 

누님.

눈물겨웁습니다

 

, 우물물같이 고이는 푸름 속에

다소곳이 젖어 있는 붉고 흰 목화꽃은,

누님.

누님이 피우셨지요?

 

튕기면 울릴 듯한 가을의 푸르름엔

바윗돌도 모두 바스라져 내리는데.......

 

, 마약과 같은 봄을 지내어서

, 무지한 여름을 지내어서

질경이 풀 지슴길을 오르내리며

허리 구부리고 피우셨지요?




숨을 참는다고 해서 심장이 멈추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리움을 참는다고 기억을 지울 순 없다. 계속해서 잘라도 움트는 가시나무처럼 밟을수록 그리움은 자라날 것이다. 이 시를 보며 기억이 났던 그리움에 대한 명언이다. 그리움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더 많은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좋았던 기억이면 다시 생각나면 좋겠지만 괴롭다고 생각됐던 지금은 나중에는 그리워 질 것이다.

 

이 시집을 보면서 가장 먼저 느꼈던 점은 이 전에 봤던 황지우, 박노해 시인의 정치적인 시와는 다른 평화로운 시라는 점이다. 정치적인 시는 그 시대의 상황을 모른다면 이 시인이 왜 이렇게 썼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서정주의 시집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감성에 초점을 둔 시가 많았던 것 같다. 내가 고른 이 목화같은 시나 동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등의 시는 그리움을 보여주는 시인 것 같고 그 밖에 아쉬움 등을 나타내는 그런 감성적인 시가 많다고 생각한다.

 

책을 평소에 많이 안 읽다보니 이 시집에 나온 문구들을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단어가 어려운 것도 있고, 문맥의 파악도 잘 안됐던 시도 많았는데 이 시를 인용하게 된 이유는 단어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리운 마음이 바로 와 닿았던 점이 컸던 것 같다.

 

시인의 누님에 해당하는 사람은 나에게는 친할머니로서 다가왔다. 내가 9살 때 돌아가신 친할머니께서는 손주들이 태어나실 때마다 집 마당에 감나무를 심으셨는데, 나랑 내 동생의 나무와 고종사촌의 나무가 지금도 그 집 앞에 있다고 한다. 지금은 내가 태어날 때 심어진 나무가 20년이 넘었을 텐데 십 년 동안 그 집을 가보질 못해서 얼마나 컸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제는 매 년 가을마다 크고 달고 맛있는 감을 주는 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시가 객관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작가가 시를 쓰면서 이용한 비유와 말줄임표(......)로써 자신의 감정을 매우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처럼 시를 잘 못 읽는 사람이 봐도 바로 이해가 가게 쉬운 단어들로 감정을 표현했던 점에서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이 시가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2주 전 황지우의 시 설경에서 나온 수의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생각이 났던 9살 때 돌아가셨던 친할머니가 다시 한 번 기억에 떠올랐던 것 때문이다. 나랑 동생이 태어났을 때 앞마당에 심으신 감나무가 이 목화라는 시에서 목화랑 매치가 되어서 다시 떠올랐던 것 같다.

 

에세이를 쓰면서 10년도 더 전에 돌아가셨던 할머니께서 두 번이나 등장하시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남이 보면 참 할머니를 사랑했구나하고 할 수 있을 법하지만, 사실은 난 그렇게 할머니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항상 우리가 명절 때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께서는 아이고 우리 강아지들 왔냐고 반기셨는데 어린 마음에 왜 자꾸 우리를 개처럼 생각을 하시는지 삐뚤어진 생각도 했었고, 밥을 챙겨 주신 다음에는 계속 주무시는 등 우리랑 잘 안 놀아 주셨기 때문이다. 돌아가시기 직전의 설날 때 갑자기 우리랑 카드놀이도 해주시고 잘 놀아 주셨던 것이 눈에 밟혀서 할머니가 그리워 졌던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짝사랑했던 여자애도 생각이 났다. 내가 여자애들을 많이 상대해 보지 않아서 말을 정말 못 걸었는데,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바보 같은 짝사랑이었지만, 뭔가 소소한 감정들이 조금씩 기억이 나는 것 같다. 같이 수업을 듣는데 자리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계속 쳐다보다가 눈을 마주치는 것 만 으로도 좋았고, 옆에 스쳐 지나갈 때에는 향기를 맡는 것마저도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같은 교실에 있었던 예쁜 여자애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나고,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 지방으로 이사가면서 소위 노는 놈들의 무리에서 그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어쩌다가 그런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매일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가기 전에 그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지금의 내 모습처럼 어두운 피부색을 갖게 됐던 기억, 같이 피시방 가서 게임을 했던 기억, ‘버디버디같은 메신저를 이용해서 늦은 밤까지 서로 채팅했던 기억, 그 친구들이 육교 위에서 담배를 피고 있을 때 말리지 못했던 기억 등 좋았던 기억, 안 좋았던 기억이 모두 생각이 난다. 안 좋았던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아마 좋은 기억이 더 크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장소로 돌아가서 같이 축구했던 곳이나 같이 갔던 피시방을 간다고 해도, 심지어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서 같이 논다고 해도 10년 전의 그 때처럼 신나게 놀지는 못할 것이다. 다 개인의 사정이 있고,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되어 서로 추억 속에서 그때는 그랬지하는 마음만 갖고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끔씩 힘들 때에는 그 때의 추억을 되돌아보며 머릿속에 떠올릴 수도 있고, 그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리움이란 것은 그 사람이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앞으로 해야 될 일에 대하여 약간의 자극제가 되어 줄 수도 있다.

 

물론, 기억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작년 5월 즈음에 우리나라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소속 외국인 타자 히메네스가 자신의 고향인 베네수엘라에 두고 온 아내와 두 아이를 계속 마음에 걸려하는 향수병에 걸린 것이다. 이 사람의 향수병처럼 무언가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 크면 해야 할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아서 힘들어 할 것이다. 내가 실제로 들었던 경우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부모님과 집이 너무 그리워서 밤마다 운다는 것 이다. 내가 위에서 말했던 나의 경험에서 나온 그리움과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이 친구의 그리움은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약간의 성격은 다르긴 하지만,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대조하는 예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리움을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가 있을까? 나는 이공계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구분을 짓은 잣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 나름대로 그걸 생각해 봤는데, 바로 다시 되돌아 갈 수 있는지에 따라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미국으로 유학을 간 내 친구의 경우에는 자기 가족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다시 돌아가는 것을 그리워하는 것인데,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추억으로써의 그리움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이 친구가 미국에 있었는데 한국에 계시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면 이 친구는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때 가족들이 그리운 것은 가족들과 함께 했던 여러 활동들을 그리워하는 추억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축구하고, 피시방 갔던 것은 모두가 연락이 되고, 모두가 시간을 맞추어, 모두가 그 때 그 시절을 기억을 하여 그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논다면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되돌아 갈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예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향수병은 추억이 아닌 그리움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는 그리움은 추억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외는 존재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대부분은 이런 것 같다. 아마 내가 정의한 추억의 그리움은, 사람이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게 되어 한 번 생각하고 말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되돌아 갈 수 있는데 포기란 것을 하기 어려워 혼자 끙끙 앓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예시를 든 것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었는데, 꼭 사람에 대해서만 그리움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 어떤 물건에 대해서도 그리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손목시계를 사주셨다. 그 손목시계는 3학년 때 눈이 펑펑 오던 겨울에 학교 운동장에서 잃어버렸는데, 다행히도 친구가 찾아서 줘서 5학년 때까지 차고 다녔다. 지금은 약이 다해서 시계가 움직이진 않지만 그 당시에는 항상 학교에 갈 때마다 손목에 차고 다니면서 시간 관리 같은 것도 배우는 등 고마운 물건이었고, 지금도 집 어딘가에는 있어도 굳이 찾지는 않지만 예전에 그랬었지하고 생각날 때가 있다. , 어렸을 때 CRT모니터(뚱뚱한 모니터) 있는 지금은 망한 진돗개회사에서 나온 컴퓨터로 게임이나 인터넷 했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물건을 그리워하는 경우는 굳이 기억을 떠올려야 하고, 평소에도 막 생각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사람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물건에 대한 그리움이 덜하다고 생각하고, 그리움이라기보다는 그저 기억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사용을 했던 자신에 대한 기억이 조금 더 크기 때문에 결국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또는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사람은 남이 아닌 어린 시절, 과거의 나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아가서 장소에 대한 그리움도 있을 수 있겠는데, 예전에 친구들과 축구를 열심히 했던 운동장, 반 친구들과 열심히 몰래 게임을 했던 컴퓨터실 같이 결국에는 이 장소에 대한 그리움도 친구, 가족 등과 같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위와 같이 그리움의 대상에 대한 고찰을 해봤는데, 그리움이란 것은 자신이 물건, 장소에 대한 기억은 해도 그리움의 대상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그냥 그리움과 추억으로 발전한 그리움으로써 다시 한 번 나눌 수 있다.

 

이렇듯 나는 그리움이란 것에 대해 경험에 근거하여 분류를 해봤다. 때로는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 그 지나가면서 맡았던 그 사람의 향기마저도 그리워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때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매우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간은 흐르고 흐르는 시간만큼 과거가 될 현재는 분명히 미래에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추억이 될 오늘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삶이 아닐까.(숨을 참는다고 해서 심장이 멈추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리움을 참는다고 기억을 지울 순 없다. 계속해서 잘라도 움트는 가시나무처럼 밟을수록 그리움은 자라날 것이다. 이 시를 보며 기억이 났던 그리움에 대한 명언이다. 그리움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더 많은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좋았던 기억이면 다시 생각나면 좋겠지만 괴롭다고 생각됐던 지금은 나중에는 그리워 질 것이다.

 

이 시집을 보면서 가장 먼저 느꼈던 점은 이 전에 봤던 황지우, 박노해 시인의 정치적인 시와는 다른 평화로운 시라는 점이다. 정치적인 시는 그 시대의 상황을 모른다면 이 시인이 왜 이렇게 썼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서정주의 시집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감성에 초점을 둔 시가 많았던 것 같다. 내가 고른 이 목화같은 시나 동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등의 시는 그리움을 보여주는 시인 것 같고 그 밖에 아쉬움 등을 나타내는 그런 감성적인 시가 많다고 생각한다.

 

책을 평소에 많이 안 읽다보니 이 시집에 나온 문구들을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단어가 어려운 것도 있고, 문맥의 파악도 잘 안됐던 시도 많았는데 이 시를 인용하게 된 이유는 단어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리운 마음이 바로 와 닿았던 점이 컸던 것 같다.

 

시인의 누님에 해당하는 사람은 나에게는 친할머니로서 다가왔다. 내가 9살 때 돌아가신 친할머니께서는 손주들이 태어나실 때마다 집 마당에 감나무를 심으셨는데, 나랑 내 동생의 나무와 고종사촌의 나무가 지금도 그 집 앞에 있다고 한다. 지금은 내가 태어날 때 심어진 나무가 20년이 넘었을 텐데 십 년 동안 그 집을 가보질 못해서 얼마나 컸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제는 매 년 가을마다 크고 달고 맛있는 감을 주는 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시가 객관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작가가 시를 쓰면서 이용한 비유와 말줄임표(......)로써 자신의 감정을 매우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처럼 시를 잘 못 읽는 사람이 봐도 바로 이해가 가게 쉬운 단어들로 감정을 표현했던 점에서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이 시가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2주 전 황지우의 시 설경에서 나온 수의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생각이 났던 9살 때 돌아가셨던 친할머니가 다시 한 번 기억에 떠올랐던 것 때문이다. 나랑 동생이 태어났을 때 앞마당에 심으신 감나무가 이 목화라는 시에서 목화랑 매치가 되어서 다시 떠올랐던 것 같다.

 

에세이를 쓰면서 10년도 더 전에 돌아가셨던 할머니께서 두 번이나 등장하시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남이 보면 참 할머니를 사랑했구나하고 할 수 있을 법하지만, 사실은 난 그렇게 할머니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항상 우리가 명절 때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께서는 아이고 우리 강아지들 왔냐고 반기셨는데 어린 마음에 왜 자꾸 우리를 개처럼 생각을 하시는지 삐뚤어진 생각도 했었고, 밥을 챙겨 주신 다음에는 계속 주무시는 등 우리랑 잘 안 놀아 주셨기 때문이다. 돌아가시기 직전의 설날 때 갑자기 우리랑 카드놀이도 해주시고 잘 놀아 주셨던 것이 눈에 밟혀서 할머니가 그리워 졌던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짝사랑했던 여자애도 생각이 났다. 내가 여자애들을 많이 상대해 보지 않아서 말을 정말 못 걸었는데,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바보 같은 짝사랑이었지만, 뭔가 소소한 감정들이 조금씩 기억이 나는 것 같다. 같이 수업을 듣는데 자리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계속 쳐다보다가 눈을 마주치는 것 만 으로도 좋았고, 옆에 스쳐 지나갈 때에는 향기를 맡는 것마저도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같은 교실에 있었던 예쁜 여자애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나고,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 지방으로 이사가면서 소위 노는 놈들의 무리에서 그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어쩌다가 그런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매일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가기 전에 그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지금의 내 모습처럼 어두운 피부색을 갖게 됐던 기억, 같이 피시방 가서 게임을 했던 기억, ‘버디버디같은 메신저를 이용해서 늦은 밤까지 서로 채팅했던 기억, 그 친구들이 육교 위에서 담배를 피고 있을 때 말리지 못했던 기억 등 좋았던 기억, 안 좋았던 기억이 모두 생각이 난다. 안 좋았던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아마 좋은 기억이 더 크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장소로 돌아가서 같이 축구했던 곳이나 같이 갔던 피시방을 간다고 해도, 심지어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서 같이 논다고 해도 10년 전의 그 때처럼 신나게 놀지는 못할 것이다. 다 개인의 사정이 있고,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되어 서로 추억 속에서 그때는 그랬지하는 마음만 갖고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끔씩 힘들 때에는 그 때의 추억을 되돌아보며 머릿속에 떠올릴 수도 있고, 그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리움이란 것은 그 사람이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앞으로 해야 될 일에 대하여 약간의 자극제가 되어 줄 수도 있다.

 

물론, 기억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작년 5월 즈음에 우리나라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소속 외국인 타자 히메네스가 자신의 고향인 베네수엘라에 두고 온 아내와 두 아이를 계속 마음에 걸려하는 향수병에 걸린 것이다. 이 사람의 향수병처럼 무언가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 크면 해야 할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아서 힘들어 할 것이다. 내가 실제로 들었던 경우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부모님과 집이 너무 그리워서 밤마다 운다는 것 이다. 내가 위에서 말했던 나의 경험에서 나온 그리움과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이 친구의 그리움은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약간의 성격은 다르긴 하지만,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대조하는 예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리움을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가 있을까? 나는 이공계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구분을 짓은 잣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 나름대로 그걸 생각해 봤는데, 바로 다시 되돌아 갈 수 있는지에 따라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미국으로 유학을 간 내 친구의 경우에는 자기 가족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다시 돌아가는 것을 그리워하는 것인데,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추억으로써의 그리움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이 친구가 미국에 있었는데 한국에 계시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면 이 친구는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때 가족들이 그리운 것은 가족들과 함께 했던 여러 활동들을 그리워하는 추억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축구하고, 피시방 갔던 것은 모두가 연락이 되고, 모두가 시간을 맞추어, 모두가 그 때 그 시절을 기억을 하여 그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논다면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되돌아 갈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예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향수병은 추억이 아닌 그리움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는 그리움은 추억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외는 존재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대부분은 이런 것 같다. 아마 내가 정의한 추억의 그리움은, 사람이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게 되어 한 번 생각하고 말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되돌아 갈 수 있는데 포기란 것을 하기 어려워 혼자 끙끙 앓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예시를 든 것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었는데, 꼭 사람에 대해서만 그리움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 어떤 물건에 대해서도 그리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손목시계를 사주셨다. 그 손목시계는 3학년 때 눈이 펑펑 오던 겨울에 학교 운동장에서 잃어버렸는데, 다행히도 친구가 찾아서 줘서 5학년 때까지 차고 다녔다. 지금은 약이 다해서 시계가 움직이진 않지만 그 당시에는 항상 학교에 갈 때마다 손목에 차고 다니면서 시간 관리 같은 것도 배우는 등 고마운 물건이었고, 지금도 집 어딘가에는 있어도 굳이 찾지는 않지만 예전에 그랬었지하고 생각날 때가 있다. , 어렸을 때 CRT모니터(뚱뚱한 모니터) 있는 지금은 망한 진돗개회사에서 나온 컴퓨터로 게임이나 인터넷 했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물건을 그리워하는 경우는 굳이 기억을 떠올려야 하고, 평소에도 막 생각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사람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물건에 대한 그리움이 덜하다고 생각하고, 그리움이라기보다는 그저 기억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사용을 했던 자신에 대한 기억이 조금 더 크기 때문에 결국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또는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사람은 남이 아닌 어린 시절, 과거의 나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아가서 장소에 대한 그리움도 있을 수 있겠는데, 예전에 친구들과 축구를 열심히 했던 운동장, 반 친구들과 열심히 몰래 게임을 했던 컴퓨터실 같이 결국에는 이 장소에 대한 그리움도 친구, 가족 등과 같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위와 같이 그리움의 대상에 대한 고찰을 해봤는데, 그리움이란 것은 자신이 물건, 장소에 대한 기억은 해도 그리움의 대상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그냥 그리움과 추억으로 발전한 그리움으로써 다시 한 번 나눌 수 있다.

 

이렇듯 나는 그리움이란 것에 대해 경험에 근거하여 분류를 해봤다. 때로는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 그 지나가면서 맡았던 그 사람의 향기마저도 그리워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때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매우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간은 흐르고 흐르는 시간만큼 과거가 될 현재는 분명히 미래에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추억이 될 오늘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삶이 아닐까.숨을 참는다고 해서 심장이 멈추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리움을 참는다고 기억을 지울 순 없다. 계속해서 잘라도 움트는 가시나무처럼 밟을수록 그리움은 자라날 것이다. 이 시를 보며 기억이 났던 그리움에 대한 명언이다. 그리움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더 많은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좋았던 기억이면 다시 생각나면 좋겠지만 괴롭다고 생각됐던 지금은 나중에는 그리워 질 것이다.

 

이 시집을 보면서 가장 먼저 느꼈던 점은 이 전에 봤던 황지우, 박노해 시인의 정치적인 시와는 다른 평화로운 시라는 점이다. 정치적인 시는 그 시대의 상황을 모른다면 이 시인이 왜 이렇게 썼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서정주의 시집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감성에 초점을 둔 시가 많았던 것 같다. 내가 고른 이 목화같은 시나 동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등의 시는 그리움을 보여주는 시인 것 같고 그 밖에 아쉬움 등을 나타내는 그런 감성적인 시가 많다고 생각한다.

 

책을 평소에 많이 안 읽다보니 이 시집에 나온 문구들을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단어가 어려운 것도 있고, 문맥의 파악도 잘 안됐던 시도 많았는데 이 시를 인용하게 된 이유는 단어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리운 마음이 바로 와 닿았던 점이 컸던 것 같다.

 

시인의 누님에 해당하는 사람은 나에게는 친할머니로서 다가왔다. 내가 9살 때 돌아가신 친할머니께서는 손주들이 태어나실 때마다 집 마당에 감나무를 심으셨는데, 나랑 내 동생의 나무와 고종사촌의 나무가 지금도 그 집 앞에 있다고 한다. 지금은 내가 태어날 때 심어진 나무가 20년이 넘었을 텐데 십 년 동안 그 집을 가보질 못해서 얼마나 컸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제는 매 년 가을마다 크고 달고 맛있는 감을 주는 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시가 객관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작가가 시를 쓰면서 이용한 비유와 말줄임표(......)로써 자신의 감정을 매우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처럼 시를 잘 못 읽는 사람이 봐도 바로 이해가 가게 쉬운 단어들로 감정을 표현했던 점에서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이 시가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2주 전 황지우의 시 설경에서 나온 수의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생각이 났던 9살 때 돌아가셨던 친할머니가 다시 한 번 기억에 떠올랐던 것 때문이다. 나랑 동생이 태어났을 때 앞마당에 심으신 감나무가 이 목화라는 시에서 목화랑 매치가 되어서 다시 떠올랐던 것 같다.

 

에세이를 쓰면서 10년도 더 전에 돌아가셨던 할머니께서 두 번이나 등장하시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남이 보면 참 할머니를 사랑했구나하고 할 수 있을 법하지만, 사실은 난 그렇게 할머니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항상 우리가 명절 때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께서는 아이고 우리 강아지들 왔냐고 반기셨는데 어린 마음에 왜 자꾸 우리를 개처럼 생각을 하시는지 삐뚤어진 생각도 했었고, 밥을 챙겨 주신 다음에는 계속 주무시는 등 우리랑 잘 안 놀아 주셨기 때문이다. 돌아가시기 직전의 설날 때 갑자기 우리랑 카드놀이도 해주시고 잘 놀아 주셨던 것이 눈에 밟혀서 할머니가 그리워 졌던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짝사랑했던 여자애도 생각이 났다. 내가 여자애들을 많이 상대해 보지 않아서 말을 정말 못 걸었는데,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바보 같은 짝사랑이었지만, 뭔가 소소한 감정들이 조금씩 기억이 나는 것 같다. 같이 수업을 듣는데 자리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계속 쳐다보다가 눈을 마주치는 것 만 으로도 좋았고, 옆에 스쳐 지나갈 때에는 향기를 맡는 것마저도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같은 교실에 있었던 예쁜 여자애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나고,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 지방으로 이사가면서 소위 노는 놈들의 무리에서 그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어쩌다가 그런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매일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가기 전에 그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지금의 내 모습처럼 어두운 피부색을 갖게 됐던 기억, 같이 피시방 가서 게임을 했던 기억, ‘버디버디같은 메신저를 이용해서 늦은 밤까지 서로 채팅했던 기억, 그 친구들이 육교 위에서 담배를 피고 있을 때 말리지 못했던 기억 등 좋았던 기억, 안 좋았던 기억이 모두 생각이 난다. 안 좋았던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아마 좋은 기억이 더 크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장소로 돌아가서 같이 축구했던 곳이나 같이 갔던 피시방을 간다고 해도, 심지어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서 같이 논다고 해도 10년 전의 그 때처럼 신나게 놀지는 못할 것이다. 다 개인의 사정이 있고,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되어 서로 추억 속에서 그때는 그랬지하는 마음만 갖고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끔씩 힘들 때에는 그 때의 추억을 되돌아보며 머릿속에 떠올릴 수도 있고, 그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리움이란 것은 그 사람이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앞으로 해야 될 일에 대하여 약간의 자극제가 되어 줄 수도 있다.

 

물론, 기억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작년 5월 즈음에 우리나라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소속 외국인 타자 히메네스가 자신의 고향인 베네수엘라에 두고 온 아내와 두 아이를 계속 마음에 걸려하는 향수병에 걸린 것이다. 이 사람의 향수병처럼 무언가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 크면 해야 할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아서 힘들어 할 것이다. 내가 실제로 들었던 경우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부모님과 집이 너무 그리워서 밤마다 운다는 것 이다. 내가 위에서 말했던 나의 경험에서 나온 그리움과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이 친구의 그리움은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약간의 성격은 다르긴 하지만,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대조하는 예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리움을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가 있을까? 나는 이공계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구분을 짓은 잣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 나름대로 그걸 생각해 봤는데, 바로 다시 되돌아 갈 수 있는지에 따라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미국으로 유학을 간 내 친구의 경우에는 자기 가족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다시 돌아가는 것을 그리워하는 것인데,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추억으로써의 그리움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이 친구가 미국에 있었는데 한국에 계시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면 이 친구는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때 가족들이 그리운 것은 가족들과 함께 했던 여러 활동들을 그리워하는 추억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축구하고, 피시방 갔던 것은 모두가 연락이 되고, 모두가 시간을 맞추어, 모두가 그 때 그 시절을 기억을 하여 그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논다면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되돌아 갈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예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향수병은 추억이 아닌 그리움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는 그리움은 추억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외는 존재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대부분은 이런 것 같다. 아마 내가 정의한 추억의 그리움은, 사람이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게 되어 한 번 생각하고 말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되돌아 갈 수 있는데 포기란 것을 하기 어려워 혼자 끙끙 앓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예시를 든 것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었는데, 꼭 사람에 대해서만 그리움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 어떤 물건에 대해서도 그리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손목시계를 사주셨다. 그 손목시계는 3학년 때 눈이 펑펑 오던 겨울에 학교 운동장에서 잃어버렸는데, 다행히도 친구가 찾아서 줘서 5학년 때까지 차고 다녔다. 지금은 약이 다해서 시계가 움직이진 않지만 그 당시에는 항상 학교에 갈 때마다 손목에 차고 다니면서 시간 관리 같은 것도 배우는 등 고마운 물건이었고, 지금도 집 어딘가에는 있어도 굳이 찾지는 않지만 예전에 그랬었지하고 생각날 때가 있다. , 어렸을 때 CRT모니터(뚱뚱한 모니터) 있는 지금은 망한 진돗개회사에서 나온 컴퓨터로 게임이나 인터넷 했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물건을 그리워하는 경우는 굳이 기억을 떠올려야 하고, 평소에도 막 생각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사람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물건에 대한 그리움이 덜하다고 생각하고, 그리움이라기보다는 그저 기억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사용을 했던 자신에 대한 기억이 조금 더 크기 때문에 결국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또는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사람은 남이 아닌 어린 시절, 과거의 나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아가서 장소에 대한 그리움도 있을 수 있겠는데, 예전에 친구들과 축구를 열심히 했던 운동장, 반 친구들과 열심히 몰래 게임을 했던 컴퓨터실 같이 결국에는 이 장소에 대한 그리움도 친구, 가족 등과 같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위와 같이 그리움의 대상에 대한 고찰을 해봤는데, 그리움이란 것은 자신이 물건, 장소에 대한 기억은 해도 그리움의 대상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그냥 그리움과 추억으로 발전한 그리움으로써 다시 한 번 나눌 수 있다.

 

이렇듯 나는 그리움이란 것에 대해 경험에 근거하여 분류를 해봤다. 때로는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 그 지나가면서 맡았던 그 사람의 향기마저도 그리워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때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매우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간은 흐르고 흐르는 시간만큼 과거가 될 현재는 분명히 미래에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추억이 될 오늘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삶이 아닐까.(국화 옆에서- 서정주)